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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양문화재단 매거진 <누리>_배우 강신일_캐릭터 밖으로 나온 배우-자유기고가 임효정

달팽이여행 2013. 5. 24. 11:55

 

배우 강신일은 차분하고 진중하고 사려깊은 사람이었다사실 지금 그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은 목소리에 대한 인상으로 남아있다그는 느릿하고 낮은 톤으로 말을 이었는데, 공기에 부드러운 결을 일으키는 그의 목소리가 뱃고동 소리처럼 묵직하고 편안하여 듣기 좋았다. (목소리 좋은 남자는 희소성이 있고, 여자는 청각에 예민한 동물이다.) 어째 그의 목소리의 진가는 TV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듯 하다. 연극 무대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그의 태도와, "나와 맞지 않는 문화도 필요하다"고 말하던 그의 눈빛이 오늘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Artists +

city space

 

캐릭터 밖으로 나온 배우

예술가와 도시

배우 강신일

배우에게 기다림이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좋은 작품을, 흥미로운 캐릭터를, 나를 선택해줄 감독을, 그것들을 만날 시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같은 운명적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로 대중 앞에 남자가 있다. 인생에서 다시 없을 고비를 감내하는 시기에 기획하고, 제작하고, 연출하고, 출연한 무대다. 30년간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누비는 배우 강신일을 만났다.

 

배우 강신일을 서울역 맞은편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더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를 만나기 위해 몇번의 시간 조정을 거친 후였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도착한 강신일이 연습실 안으로 몸을 들였다. 간암 5년차면 완치로 본다던데, 그의 안색이 좋아 보였다. 크지 않은 몸집에서 강골의 기운이 풍겨 나왔다. 뭐랄까, 매 순간 진지하고 정성껏 살아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고양시 화정동에 23년째

 

그는 결혼과 함께 1990년 벽제읍 사현리의 소박한 아파트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엔 허허벌판에 산골짜기였던 곳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살다 보니 1995년 화정단지가 만들어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화정동에서 살고 있다. 벌써 고양에산 지 햇수로 23년째다.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잠시 세월의 필름을 되감는다.

 

그는 집 근처에서 주말농장을 한다. ‘채소 정도는 스스로 가꾸어 먹자고 생각하면서 시작한 일이다. 손수 땀 흘려 심고 농약 한 방울 없이 키운 채소를 먹다 보면 기분도 다르고 뿌듯하다. 주말농장을 오가는 그의 일상은 참으로 건강하다. 우선 집에서 1km 거리인 텃밭까지 뛰어서 간다. 텃밭에 도착하면 잡초부터 뽑고, 양상추도 따고, 그렇게 채소로 채운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다시 운동기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 스트레칭을 한참 한 후에야 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지금은 바빠져서 그렇게 못하지만, 한동안 매일같이 이 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그가 본래 이렇게 건강을 챙기며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몸을 생각하게 된 건 4년 전 몸이 안 좋아지면서부터다.2008년 그는 간암을 선고받았다.

 

나는 건강해야 한다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며 나오는 듯한 목소리는 진중한 그의 성격으로 빚은 것이었을까. 청천벽력 같은 암선고를 그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사람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처럼 몸에도 좋은 균과 나쁜 균이 있는데, 나쁜 놈을 내친다고 온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내 몸안에 있는 거라면 이 놈도 나이겠거니 하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좋지 않나 했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수술하기 전부터 아무렇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글쎄요, 어디서부터 나온 확신인지는 모르겠어요. 진작부터 나는 아무런 이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제 그는 완치 단계로 보는 발병 5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간암을 경험한 것은 배우 강신일의 인생에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됐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나의 그 소식을들은 분들이 밤새 울었다는 거예요. 저에게는 선생뻘 되는 선배님부터 형뻘 되는 분들이.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이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의 깊이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을 좀 더 생생하게 깨닫게 됐죠. 어떤 사랑의 깊이를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건강해야 되겠다 생각했어요. 물론 우리 가족들이야 더 힘들었겠지요. 그런 실체적인 경험을 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진지해진 것 같아요.”

 

그는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을 참으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면서도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와 불편함에 대해 말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가치관과 삶의 자세에 대한 많은 것이 전해졌다. “몸이 한번 안 좋았었기 때문에,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어요. 내가 아픈 건 둘째치고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니까,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피해를 봐요. 그런 생각에서도 건강을 살피게 되는 거지요.”

 

배역 아닌나 자신이 무대에 오르면 어떨까

 

4년 전 충북 괴산에서 요양을 할 때였다. 아내가주변에서 당신이 목소리가 좋다는데, 그 재능을 살리는 무대를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나하고 넌지시 운을 띄웠다. 사실 그는 이미 내레이션을 하면서 목소리에 대한 호평을 받아왔었다. 첫 경험은 1997년 세계의 오지를 소개하는 KBS <다큐멘터리 극장>에서 내레이션을 맡으면서 이뤄졌다. 그때만 하더라도 내레이션은 성우들이 전담하던 시절이었다. 한 선배가기존의 내레이션보다 울림을 느낄 수 있다고 칭찬했다. 2008년엔 KBS <낭독의 발견>에서 출연 섭외가 왔다. 여기서 기존 낭독 프로그램과는 다른 실험적인 콘셉트를 시도했다. 음악과 함께 평소 그가 좋아하던 시를 낭송하고, 희곡과 소설의 한 부분을 낭독했다. 노래도 한번 하면서(그의 노래는 수준급이다), 시와 노래와 소설과 연극을 음악에 버무렸다.

 

‘배우가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이 연극의 매력이지만, 배우가 그렇게 쌓인 무대 경험으로, 나 자체로 무대에 서면 어떨까? 무대에서 관객도 즐거워할 수 있는 시, 소설, 좋은 연극의 하이라이트를 라이브 반주와 함께 낭송해보면 어떨까?’ 생각은 점차 구체화됐다. 이걸 무대에 올려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탄생한 연극이 바로 2011년 대학로에서 첫 선을 보인 <강신일과 여우>. 3회의 공연이 티켓 발매 몇 분만에 전석 매진됐다. 수익금은 전액 기부했다. 이 역시 시련의 시기가 낳은 나누는 삶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올해 11 1일부터 11일까지 그는 고양아람누리 무대에 이 공연을 다시 올린다.

 

소설과 연극, 시와 노래를 음악에 녹이다

 

처음엔 만드는 사람도 이 공연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지 난감해했다. 그야말로 처음 시도하는 복합장르였기 때문이다. “원맨쇼라고 해도 좋고, 연극 콘서트라고 해도 좋아요. 딱히 뭐라고 정의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연극도 아니고, 콘서트도 아니고. 앞에 타이틀을 붙이기가 어려웠어요.”

 

이번 공연에서도 연극 <칠수와 만수>, <서울로 가는 길>, <세월이 가면>, <슬픈 연극>, <you light up my life> 중 주요 부분을 연기하고,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을 낭송한다. 또 노래로 만들어진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하고 낭송하며, 연극 <오월의 신부> <>의 한 부분을 연기하고 노래한다. 마지막에는 모노드라마 <진술>의 한 부분을 연기한다. 9가지 작품들은 물론 강신일이 직접 골랐다. 그는선정하고 보니 이게 다 인생, 가족, 아내, , 연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나름 사랑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각 작품들이 성격은 저마다 다르지만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뜻에서 부제를아홉 색깔 이야기로 잡았다.

 

낭송 음반 냅니다

 

작년에 이 공연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는지 묻자,그는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그 후배가 정말 미워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 공연을 보면서 미움의 감정을 키워왔던 자신에 대해서 반성했고, 울었고, 그를 용서하게 됐다고 했다. 힐링이 대세가 된 세상에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힐링 연극이 된 걸까. 그는 이 공연을감상에 초점을 두고 준비했다. 공연을 준비하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집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라이브 연주에 노래와 연극, , 곡을 낭송하는 이런 작품도 얼마든지 혼자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는 이 생각을 발전시켜 지금 음반 제작을 구상 중이다. 공연 시기에 맞춰 음반을 발매할 생각이다.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확정할 수는 없지만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인터뷰 내내 필자는 그가 하는 말의 내용 만큼이나 소리의 질감 자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지인 말마따나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울림이 있었다. 청각의 감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재질감을 지닌 소리, 12시 이후 라디오에서 들려 나왔으면 하는 목소리를 그는 지니고 있었다. 뱃고동 소리처럼 아련하기도 하고, 아날로그 장치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담백했고, 진중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성의 없이 흘려 말하지 않고 눌러서 발음하는 느낌이었다.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더욱 그렇게 훈련한 걸까. 듣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와 맞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문화가 일종의대세인 시대에 이처럼 정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공연이 과연 관객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을까. “단조로울 거라고 단정해 버리는 사람도 있을텐데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잠시 진지한 눈빛으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문화 성향과 비교하면 시대에 뒤처지는 거죠. 고리타분할 수 있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문화는 다양해야 한다고. 젊은 사람들의 문화가 시끄럽고 과격하다고 반감을 느끼는 어르신도 계세요. 그러나 나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죠. 나하고 맞지 않는 것에 대한 거리감, 거부감을 갖기보다는 나하고는 맞지 않으나 그런 것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의 힘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문화가 성숙해야 시민의식이 높아지는 거잖아요. 어쨌든 뭐 하나가 유행이니까 그쪽으로 쏠리는, 그야말로 소비적인 문화보다는 다양한 성격의 문화가 서로 어떤 최고점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고, 그런 문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도 그런 의미에서 한 켠에 자리할 수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고요. 어쨌든 새로운 문화 형태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너무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잊고 있었던 정서를 다시 한번 끄집어보고, 찾아보고, 느껴보자는 생각이 있어요.”

 

지역 문화가 발전해야

 

또한 그는 오래 살아온 고양에서 공연을 올리게 된 것에 대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공연뿐 아니라 모든 문화 예술이 서울에 집중돼 있어요. 이런 공연 시설이 화정과 일산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참 고맙고 잘된 일이에요. 고양에 문화예술인이 많이 사는데, 고양시민들의 문화 충족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고맙고,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역시 정말 고마운 거죠. 사실 그런 이유에서 하는 거예요. 고양뿐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예요. 지역 문화가 발전을 해야 전반적인 문화 수준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특유의 진중하고 차분한 목소리는 그의 성격과 신기하리만큼 닮아 있었다. 그는영화도 좋고 드라마도 좋지만 나는1년에 한 번은 연극을 해야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그가 이토록 사랑하는 연극을, 어느 때보다도 아팠던 시기에 발효시켜 만든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뜨거운 여름이 가고 마음을 촉촉히 적시고 싶은 바람이 부는 가을밤, 그가 풀어낼 작품의 이야기가 못내 궁금해졌다.

 

고양문화재단 매거진 <누리>

글 임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