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취재

(취재) 문화체육관광부_이외수 “술 취한 밤에도 꼭 책 한 권씩은…”

달팽이여행 2012. 3. 18. 22:54

‘2012 독서의 해’ 기념 특강 ‘이외수 작가의 소통과 나눔’

“어떤 책이든 읽으세요. 책이 있는 곳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길게 내다보시고 따뜻하고 촉촉하게 사십시오.”

9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린 ‘2012 독서의 해’ 기념 독서특강에서 만난 이외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강연장은 독서와 인생에 대해 이외수 작가에게 한 수 배우려는 청중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어린 학생부터 장년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은 강연 내내 이외수 작가의 말에 숨죽여 집중하고 메모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외수 작가는 이날 진행된 ‘2012 독서의 해’ 선포식에서 독서의 해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특강은 박나림 아나운서가 묻고 이외수 작가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외수 작가는 독서에 대한 자신의 생각, 책과 친해진 계기, 책이 인간과 사회에 주는 선물부터 책을 고르는 법, 청년을 위한 조언까지 애정 어린 말과 쓴 소리를 오가며 좌중들과 호흡했다. 아래는 박나림 아나운서와 이외수 작가의 일문일답.
‘2012 독서의 해’ 선포식에 이어 이외수 작가의 독서특강이 열렸다.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을 향해 이 작가가 독서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말하고 있다.
‘2012 독서의 해’ 선포식에 이어 이외수 작가의 독서특강이 열렸다.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을 향해 이 작가가 독서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말하고 있다.

박나림 아나운서(이하 박): 오늘 독서의 해 선포식을 했다. 직업이 작가시니까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으실 것 같다.

이: 예전에는 하루에 3권씩 읽었고, 술에 취한 날 밤에도 꼭 책 한 권을 읽고 잠드는 습관이 있었다. 눈이 나빠진 뒤부터는 좀 덜 읽는다. (웃음)

박: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고민될 때가 많다. 작가님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시는지 궁금하다.

어떤 책이든 닥치는대로…도서관과 서점을 내 집처럼

이: 음식도 편식을 하면 좋지 않듯이 책도 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개 부모님은 자녀가 만화책을 읽으면 학습에 지장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저는 만화책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떤 책이든 닥치는 대로 읽다보면 선별력이 생긴다. 누군가 정해주는 책을 읽기보다 스스로 책을 고르는 능력을 터득해야 한다. 미술관에서 걷다보면 수많은 명화 중에서도 유독 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림이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도서관이나 서점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것이다. 많이 사시면 더 좋고. 가능하면 이외수 것으로. (좌중 웃음)

 이외수 작가의 독서특강에 참석한 청중들은 시종일관 귀 기울여 듣고 메모하는 등 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외수 작가의 독서특강이 9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렸다. 청중들은 시종일관 귀 기울여 듣고 메모하며 열성적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여기가 예전에는 서울역사 식당 자리였다. 선생님도 옛 추억이 많이 떠오르시는지.

이: 가슴이 좀 뭉클하다. 전 노숙자 출신이다. (웃음) 고향은 경상남도인데, 강원도에서 오래 살았다. 고향을 오가면서 서울역을 많이 이용했다. 감회가 깊다.

박: 서울역은 어딘가 여행을 떠날 때 많이 찾는 곳이다. 기차에서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

이: 여행은 가볍게 떠나는 것이 좋다. 여행에서 무엇인가 얻어 오려는 분들이 많은데, 진정한 여행은 버리러 가는 것이다. 여행길에 읽는 책은 심각하고 무거운 것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책, 시집이 좋을 것 같다. 시는 비록 짧지만 영혼을 맑게 해주고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가슴을 만들어 준다.




어린 시절 이외수는 어떤 책이든 닥치는 대로 다 읽었다. 대학 때는 도서관에 있는 문학책을 모두 다 섭렵할 정도였다.

박: 시집을 추천해 주신다면.

이: 두 사람의 시집을 추천하고 싶다. 먼저 류 근의 <상처적 체질>이다.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 가사를 쓰기도 한 시인이다. 그리고 최돈선의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도 추천한다. 시대가 너무 각박해서 가슴이 다들 메말라 있다. 여러분의 가슴을 봄비처럼 촉촉하게 적셔줄 서정시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다.

도서관에 있는 문학책 모조리 다 읽었다

박: ‘내 인생의 한 권’ 같은 책이 있다면.

이: 너무 많다. 저는 서점이 딱 하나 밖에 없는 강원도 인제의 첩첩산골에서 살았다. 서점 주인 아저씨는 길 건너편 약방 아저씨와 바둑 라이벌이었다. 내가 서점에 가면 늘 내게 서점을 맡겨놓고 바둑을 두러 가셨다. 저는 누군가 책을 집어가지 않게 지키는 역할을 했다. 거기서 소설, 문학 전집 50권을 다 읽고 완전히 독서광이 됐다. 그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톰소여의 모험’,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 세계 명작부터 별의별 소설이 다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책이 얼마나 유익하고 혼을 뺏어가는 지 알았다. 그 이후에는 춘천교육대학을 다녔는데, 2년이면 졸업하는 곳을 7년 다니다가 짤렸다. 그 대신 나는 대학 도서관에 있는 문학책을 다 읽었다. 그것만 하더라도 본전 찾았다고 생각한다.

이외수 작가의 독서특강에 온 청중들이 꼼꼼히 메모를 하며 듣고 있다.
이외수 작가의 독서특강에 온 청중들이 꼼꼼히 메모를 하며 듣고 있다.

박: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책은 어떻게 구상하시고 쓰시는지 궁금하다.

이: 저는 트위터에서 120만 명의 팔로워와 대화를 한다. 젊은이들이 대다수다. 이 시대 대학생의 고민이 무엇인가 하면 취미도, 특기도, 미래도 없다는 것이다. 섬뜩하다. ‘미래가 없다. 뭘 해야 하나’ 그걸 제게 묻는다. 자신의 장래를 남에게 물어야 할 정도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이 젊은이들이다. 특히 나약하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국민 자살률이 가장 높다. 노인과 청소년 자살률도 1위다. 자살률 1위 3관왕이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독서량만 늘어도 수많은 사회 문제 해결될 것

저는 이것이 독서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량은 1년에 두 권이 안 된다. 웰빙 운동마저 물질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질됐다. 결국 정신이 황폐해져 자기 충족감이 없어지니까 명품을 산다든지 지름신의 유혹에 빠진다. 또 자꾸 먹는다. 그것이 정신적 빈곤인데도 몸이 그것을 느끼는 것처럼 착각해 자꾸 먹고 비만이 된다. 나는 독서량을 늘리는 것 하나로도 개인과 사회가 겪는 문제를 수십 가지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박: 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이 자리에 오셨다. 이 자리에는 행복한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전자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 전자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종이책과 전자책은 공존할 것

이: 저도 전자책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하악하악>을 전자책으로 냈다. 다만 저렴한 가격이 불만이다. (좌중웃음) 그렇다고 사람들이 종이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자책의 기능과 정서가 따로 있고, 종이책의 그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책은 자꾸 접할수록 좋은 것이니까. 시대와 조화를 이루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령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곳에서는 책을 한 권 들고 가시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기계가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고.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능사는 아닐 수 있다. 저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둘 다 소중하다는 인식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9일 중구 문화역서울 284(구 서울역)에서 열린 ‘2012 독서의 해
9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 284(구 서울역)에서 열린 ‘2012 독서의 해’ 선포식에 앞서 이외수 작가가 시민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박: 이외수 작가님은 다양한 계층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통의 비결은?

이: 소통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시험을 중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난독증을 앓고 있다. 생각을 읽지 못한다. 상징적으로 쓴 비유도 직설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잘못 해석하는 병폐가 아주 심하다. 이것은 결국 수능 중심의 공부, 책 읽기, 논술 중심의 글쓰기가 만든 병폐라고 생각한다. 문학 작품을 두괄식인지, 미괄식인지 분석하며 뜯어놓고 봐서는 안 된다. 뜯어놓은 시계는 가지 않는다. 글도 똑같다.

글 속으로 들어가 가슴으로 읽어라

가급적이면 책을 읽으실 때 감상 먼저 하시라. 머리로 읽지 않고 가슴으로 읽는 법을 터득하시라. 글 바깥에서 읽지 말고 글 속으로 들어가셔야 한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 흥부도 되었다가 놀부도 되었다가 해보라. 제비 다리가 부러진 부분을 읽을 때는 가슴으로 아파하라. 쓰는 사람은 머리로 안 쓴다. 시작은 머리로 하더라도 결국은 가슴으로 쓴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입장이 되는 것을 연습하면 실생활에서도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다.

 ‘2012 독서의 해’ 선포식장에 설치된 ‘생각의 나무’에 참가자들이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걸고 있다.
‘2012 독서의 해’ 선포식장에 설치된 ‘생각의 나무’에 참가자들이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종이를 걸고 있다.

박: 올해가 독서의 해로 선포됐다.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게 하기 위한 취지일 것이다. 작가님의 말씀을 들어 보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답이 나오는 것 같다. 오늘 이 자리에 다양한 연령대의 청중들이 오셨는데,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이: 먼저 우리나라 청소년들 아침에 등교할 때 가방 한번 보자. 이삿짐인지 등교 가방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자연을 보면 제비는 하늘을 잘 날고 두더지는 땅을 잘 판다. 자연에서는 한 가지만 잘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을 보면 이상하다. 제비에게 땅 파는 두더지가 있다는 것만 알려주면 되는데, 땅 파는 것을 가르친다. 교육이 이런 식의 거품이 많다. 진짜 필요한 것만 알려주면 되는데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질풍로또의 시기’ 접고 실력 연마하라

TV 프로그램 중에 ‘생활의 달인’이 있는데, 달인에게 몇 년 했는지 물어보면 제일 빠르신 분이 3년이다. 보통은 4, 5년이다. 10년 되신 분들은 팀장이 돼서 가르치고 있다. 최소한 3년이나 5년은 바쳐서 얻은 실력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질풍노도의 시대가 아니라 질풍로또의 시기를 보낸다. 왜 20대에 성공하려고 하는지 답답하다. 그 시간에 실력 연마에 힘써라. 저는 성공을 늦게 했다. 실력 연마를 뒤늦게 한 셈이다.

정책기자 임효정(프리랜서) hotpencil.l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