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여행

(여행) 한국택시신문_눈은 자연에, 입은 차향에, 코는 벚꽃향에..봄 마중 갑니다, 경남 하동

달팽이여행 2012. 4. 23. 14:31

 

눈은 자연에, 입은 차향에, 코는 벚꽃향에..

봄 마중 갑니다

올해 봄이 단단히 지각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청춘처럼 스쳐갈 봄, 찰나 같이 아쉽기만한 봄이다. 한반도 남쪽부터 서서히 올라올 봄이 언제 서울에 도착할런지 목을 빼고 기다리다 아예 9일 봄 마중에 나섰다. 목적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포근하게 감싸 안고 청정 남해를 굽어보는 야생차의 고장, 경상남도 하동이다. 하동이 어떤 곳인가. ‘차(茶)의 왕국’ 이자 ‘슬로시티의 고장’ 아닌가. 한국의 슬로시티 마을 중에서도 경남 하동군이 특히 아름답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남단으로 향하는 봄나들이길은 더욱 두근댔다.

 

오전 6시 30분경 서울 여의도를 출발한 버스가 오전 11시쯤 하동 땅에 들어섰다. 산들산들 봄바람이 환영하듯 몸을 감싸고 돌았다. 봄의 정취는 잠시 후 즐기기로 하고, 녹차의 고장에 온 만큼 녹차 관광의 명소를 먼저 찾았다. 첫 여행지는 정부가 출연해 설립한 국내 최초의 녹차연구소인 하동녹차연구소. 이곳은 녹차유산균과 하동녹차 천연 수제비누, 녹차와 다슬기를 혼합한 ‘간편환’ 등 녹차 기반의 신제품을 개발해 녹차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한다. 일회용 하동녹차 천연 수제비누 제조법은 이미 특허출원까지 완료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녹차의 달인’ 이종국 하동녹차연구소장이 녹차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들려줬다. 하동녹차 명품화의 최대 공신인 그는 3대째 녹차 산업을 가업으로 이어갈 만큼 녹차를 중시하는 가풍에서 나고 자랐다.

 

차 문화 기행의 일번지

 

하동 녹차에 대한 하동 사람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하동 녹차가 수작업으로 생산돼 수확량이 많지 않아 보성 녹차에 비해 덜 알려져서 그렇지, 엄연히 우리 하동군이 우리나라 야생녹차의 시배지인데다 녹차 전문가들도 하동 녹차를 1등으로 친다.”고 하동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 말마따나 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씨를 가져와 하동 지리산 자락에 심은 것이 국내 야생차의 효시로 전해진다. <손연숙의 차문화 기행>에서 작가는 하동을 두고 ‘우리 차의 역사와 문화, 아름다움과 산업적 가치 모두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차 문화 기행의 대미를 장식할 만한 고장이요, 차 문화 기행의 1번지로 삼을만한 고장’이라고 적은 바 있다. 현재 하동군에는 1032만㎡에 연간 2107만 ㎏의 녹차가 생산되고 있다. 2010년에는 서울 G20 정상회의 때 하동녹차가 음료로 제공되면서 ‘각국 정상들이 사랑한 녹차’로 입지를 다졌다

 

차문화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차 문화 발달 과정과 차 제조 과정을 전시해 전통을 계승하는 현장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차를 기르고 만들고 마시는 과정을 살펴보노라니 인생에 필요한 수만 가지 지혜와 지침이 차 한 잔에 오롯이 담겨있는 듯 했다.

뒤이어 조유행 하동군수가 직접 찾아와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다. 2시 일정을 3시로 미루고 달려왔다는 그는 “하동, 괜찮죠?”라고 운을 떼며 소탈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갔다. 조 군수는 “대한민국 서울을 종횡무진 하시는 택시신문 기자님들이 우리 하동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을 주신다면 좋겠다. 내실이 없으면서 그런 말을 하면 미안할 수밖에 없는데, 하동은 소문내서 절대로 미안하실 일이 없다.”고 말해 하동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또한 “하동 사람과 교류해서 손해 본 사람은 아직 없다”면서 “하동 신부와 결혼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말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가 이어졌다.

 

전시 관람에 이어 다도체험이 이어졌다. 다도 예절을 익히며 선인들이 느꼈던 맛과 향을 느껴본다. 그저 바쁘게 사느라 뼛속까지 차가워졌던 육체를 달래주듯 녹차의 그윽한 향은 몸 구석구석에 건강한 기운을 전달했다.

 

 

녹차 시배지로도 유명한 쌍계사도 놓치면 섭섭하다. 하동 화개 일대에는 장터 입구에서 쌍계사를 지나 신흥까지 장장 12km의 산야에 야생의 차밭이 있다. 녹색 융단이 힘 있게 이어달리기를 하는 그곳에서 마음이 푸르러 지지 않고 배길 이는 없다. 이곳에 한국 야생초 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하동문 화개면 정금리에 있는 이 차나무는 키가 4m 15cm로, 수령은 500년~1천년 정도로 추정되는 고목이다.

 

전국에서 가장 멋진 벚꽃길

봄의 정취를 좀 더 진하게 느껴볼까.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 개나리라면 봄꽃의 절정은 뭐니뭐니해도 벚꽃이다. 하동에서 쌍계사로 들어가는 십리벛꽃길은 아름다운 벚꽃길로 국내 1,2위를 다투는 벚꽃여행의 명소다. 무려 25km 구간에 걸쳐 벚꽃 터널길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고 하여 "혼례길"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청춘이 아닌들 어떠랴. 모처럼 모든 세상 근심을 내려놓고 벚꽃길의 정취에 빠져든다. 터널을 이루는 벚꽃 나무 아래 파르라니 떨리며 흩날리는 벚꽃과 눈을 마주치는 일은 매년 겪어도 매번 새롭고 감사하다. 많은 인파가 모였지만 짜증내는 이 하나 없다.

 

그런가하면 십리벚꽃길 입구에 위치한 화개장터는 특산물인 야생녹차,·둥글레·더덕·오미자·천마·참게장과 같은 약재 및 식품 등을 주로 취급한다. 이곳에서 구입하는 산나물은 100% 국산 나물로 인정받는다. 또한 최참판댁은 악양면 평사리, 지리산 거대한 능선이 남으로 가지를 친 남부능선의 대미에 해당되는 성제봉 아래에 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잊지 말자. 봄은 짧다

벚꽃이 서울 상륙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올해 벚꽃축제 시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택시에 올라 여의도로 향할 것이다. 서울의 벚꽃도 좋지만 한 해쯤은 남쪽 지방으로, 특히 하동으로 봄 마중을 나가 벚꽃을 미리 만나보는 건 어떻냐고 권해볼 참이다. 꽃구경도 꽃구경이지만 시골 인심이 더해지니 금상첨화더라고. 시골의 정취 안에 핀 벚꽃은 서울에서 보던 벚꽃과 다르더라고 운을 띄워보련다. 당장 5월에 하동의 최대 축제인 야생차 축제가 펼쳐지고 이웃마을 여수에서 엑스포도 열리니 오가는 길에 하동에 들르기도 좋을 것이다. 마음의 쉼이 필요한 서울 사람들에게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동의 봄을 선사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봄은 짧으니까. 허망하게 가버리기 전에 최대한 누릴 일이다.

 

글: 임효정사진: 한국택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