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인터뷰

(인터뷰) 월간 국회도서관_국회의원의 서재_최민희 의원

달팽이여행 2023. 6. 27. 12:26

국회의원의 서재_최민희 의원.pdf
3.77MB

나에게 책은 생활이다

숨 쉬고 밥 먹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의 일부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새 시대를 본 사람이 너무나 많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미국 사상가 겸 문학자, 1817~1862)

 30년간 열혈 시민언론 운동가로 활동한 분이라 하여 투사느낌의 의원을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반짝이는 눈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소녀를 만났다. 사랑 고백의 대상은 다름 아닌 이다. “책 읽는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살아요.”라며 연신 책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던 그는, 어려운 시기는 책을 통해 이겨내고 행복한 시기도 책을 통해 꽃 피우고 있었다.

책에서 만난 위인들처럼

초등학교 4학년쯤 친구 집에 놀러간 그는 교내 도서관에서 한 권씩 빌려보던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60권이 친구 집에 통째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후 그는 그 집에 주저앉아 그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고. “두 가지 마음이었어요. 부러웠고, 그 친구는 나만큼 그 책을 읽지 않더라고요. 엄마, 아버지는 집에 안 온다고 (채근하시고).”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지금의 장년 세대가 어린 시절 이른 바 빨간 책이라고 부르며 즐겨 읽던 추억의 그 책이다. 꼬맹이 시절 그 전집을 섭렵한 것은 소녀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위인들을 마주 대하면서 정의감, 올바른 선택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미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훗날 정의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삶을 살게 된 출발점은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아주 어릴 적 읽어나간 책에서부터 뿌리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요라며 그가 몇 권의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강희대제가 요즘 그의 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강희대제를 읽는 이유는 요즘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정치도 혼란스럽고, 우리 당도 혼란스럽고. 옛날 역사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국 최고 지도부가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해서.”

나의 인생을 지배해온 책들에 대하여

그가 “30대 말까지도 내 인생을 지배한 책이라고 소개한 책은큰바위 얼굴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이 책을 처음 접한 뒤 30대에 접어들어 이 책을 다시 샀다고. “<>지 기자 시절에 유명한 분들을 많이 인터뷰했는데, 누군가 사랑 있는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나서 나의 문제나 불안, 초조를 같이 해 주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못 찾았죠. 그래서 제가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큰 바위 얼굴의) 근사치가 문익환 목사님, 김대중 () 대통령 같아요. 이 책을 시간 날 때마다 읽어요.”

고등학교부터 읽고 또 읽은 책인 데미안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내 마음 우러나는 소리로 살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나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와 같은 구절들은 지금도 술술 외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데미안은 결국은 . 그게 헤세가 40살에 쓴 책이에요. 딸에게 읽으라고 줬어요.”

가치관의 전도가 일어나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지적 궁금증을 해갈하는 가운데, 그는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가치관의 전도를 경험한다. 특히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 아랍과 이스라엘은 기존의 가치관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온전히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그리고 보수적인 집안에서자라온 그에게 그 책이 전하는 내용들은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언론 운동, 노동 운동에 투신하며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단편으로 써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1988년 여름 <창작과 비평>에서 『성난 휠체어』로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다섯 편의 단편을 썼다. “<말>지에서 수많은 삶의 현장을 보고 다녔을 거 아니에요. 마음속에 쌓이는 것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산재 노동자들의 시위 현장에서 전경들이 방망이를 내리치는 것을 본 그는,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내리 글을 써 내려간 다음 완성된 작품을 출판사 창비에 갖다 주었다. 그 작품이 바로 그의 등단작인 『성난 휠체어』다. “계속 글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그런데 소설만 쓰기에는 피가 너무 뜨거워서 행동을 해야 해요. 지금도 쓸 게 너무 많아요. 제 머릿속에 자료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어요.”

마음 속 생채기는 책을 통해 치유되고

놀랍게도 그는 언론운동의 투사일 뿐 아니라 전통 육아와 자연건강의 전도사로도 통한다. 특히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20만부를 찍은 베스트셀러다. 언론 운동과 자연건강법. 다소 의외의 조합으로 보이는 이 두 가지 화두를 모두 껴안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학생 운동, 노동 운동, 언론 운동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대통령을 두 번이나 바꾸고도 사회·경제 개혁이 안 되고.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교감을 하고 싶었어요.” 그는 이 책을 쓰고 동시대 엄마들을 만나면서,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며 남아 있던 생채기들을 치유할 수 있었노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자녀를 키우며 터득한 자연건강법을 세상의 엄마들과 함께 나누는 모임인 수수팥떡아이사랑모임(www.asamo.or.kr)'2000년에 만들어 대표직을 맡아왔다. 국회위원이 된 이후에는 겸직을 할 수 없어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큰 도움을 받은 책은 논어. 언론 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말로 다 할 수 없는데, 그 어려움을 다 이겨내게 한 힘이 바로 논어라고. 정말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고 연신 강조한다.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권씩은 꼭 책을 읽는다. 최근에는 양귀자 작가의 천년의 사랑이 갑자기 다시 읽고 싶어져 잠을 안자고 읽었다고. ‘그 나이에 이런 책을 썼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감사한 마음이다. 또 요즘 책 중에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책은 장강명 작가의 표백이다.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이들이 자살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다룬 이 책에서 그는 많은 것을 느꼈다. 장강명 작가는 최근 한국이 싫어서라는 작품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그는 자신이 후원회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어릴 적에 읽은 위인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속이 시원한데, 왜 후원회를 안 하는지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모든 책에서 검소하라,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누라고 말하잖아요. 저는 어디에 가든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또 사람들은 그에게 늘 어떻게 그렇게 일관되게 한 길(언론 바로 세우기)을 걸어왔느냐고 물어본다. 그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생각해봤는데, 그게 책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위인전을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던 기억, 아주 어렸을 때 읽은 책이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중학교 1, 2학년까지의 독서가 그 사람의 일생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직업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서.”

사람은 자기가 읽은 책의 총화 같아

그는 두 자녀에게도 중요한 책은 외우다시피 반복해서 읽도록 권해왔다. 이제 20대 후반이 된 아들에게는 소설이면서 교양을 많이 쌓을 수 있는, 이를 테면 뿌리 깊은 나무,정글만리와 같은 책들을 권하고 있다고. “아이들이 살면서 여러 장면을 만나게 되잖아요. 책을 많이 읽히면 위기가 와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독서 교육이 참 중요해요.”

그는 이 인터뷰가 저를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재차 돌이켰다. 그도 그럴 듯이, 우리가 어려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곱씹어보는 과정은, 자신이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돌아보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인터뷰를 앞둔 어느 날 언론 단체 후배를 만나서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게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사람은 자기가 읽은 책의 총화 같아. 책과 그 책을 통해 쌓은 지식과 감성과 성찰의 총화.”

 

책속에서 길어 올린

내 마음을 흔든 구절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