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인터뷰

(인터뷰) 월간 국회도서관_국회의원의 서재_안규백 의원

달팽이여행 2023. 6. 27. 12:22

국회의원의 서재_안규백의원.pdf
8.28MB

안규백 의원

 

나에게 책은 자양분이다

꽃에게 햇살과 물과 바람이 그렇듯

나는 책을 거름 삼아 성장한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었다.”

빌 게이츠(미국의 기업인, 1955~ )

그와의 인터뷰는 부모의 독서 교육이 자녀의 독서 세계를 얼마나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활자가 전하는 위대한 가치에 자녀가 일찍 눈 뜨게 하려면, 부모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 글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하루 5분 소리 내어 신문을 읽다

어린 시절 책에 대한 기억을 들려달라고 하자,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독서 교육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버지는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특히 저희 집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신문들이 다 왔습니다. 신문이 오면 큰 소리로 많이 읽었어요. 그 가르침이 상당히 좋았다고 봐요.” 열 살 소년은 그렇게 하루 5~10분 소리 내어 신문을 읽었다. 당시 꽤 어린 나이었는데 신문의 내용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내용을 깊이 몰랐지만 세상에 눈을 뜨는 시기가 빨랐고, 커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꿈과 목표가 빨리 생겼습니다. 어른들과 대화 소재도 많이 생겼지요. 특히 표현력, 발표력, 감정 이입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활자를 읽는 즐거움을 가르친 선친은 또 방학이 되면 아들을 시골의 서당으로 보냈다. 선친은 서당 선생에게 쌀을 주고(그때는 화폐 단위가 쌀이었다), 아들의 교육을 부탁했다. “3년 정도 방학 때마다 가서 배웠어요. 그때 배운 게 추구(抽句)’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을 배우는 것이죠. 소학보다 먼저 배우는 거라고 하더군요.”

활자에 대한 애착을 형성하다

일찍이 활자와의 애착 관계를 형성한 그는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어릴 적부터 그의 꿈은 아버지처럼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었다(그의 선친은 안기남 초대 전북도의원이다). 아버지의 정치 활동을 보며 성장한 것이 정치에 뜻을 품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터. 그는 대학 졸업 후 1988년 평화민주당 사무처 공채 1기로 시작해 20여 년간 당직자 생활을 한 뒤, 어린 시절 꿈꾸었던 대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주변에서 ‘20년 이상 한 우물을 판 조직통으로 불린다.

학생 안규백의 철학적 호기심을 촉발시킨 것은 고등학교 때 읽은 생활의 발견이었다. 이 책은 동양의 대문호로 꼽히는 임어당 선생이 1937년 쓴 생활 철학서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동양과 서양, 현실과 이상, 결혼과 연애, 자연과 여행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아주 명문장으로 펼쳐져 있어요. 중국 성현들의 삶의 자세를 강조하면서도 진실한 삶, 생활의 즐거움을 강조하고 있지요.” 그는 이 책의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 읽고 선물하며, 지인과 자녀에게 일독을 권하고 있다.

서양 고전 5, 동양 고전 5권만 읽으세요

그는 지난날의 독서 생활을 돌이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내놓고 보니 서양 고전 5, 동양 고전 5권 정도만 독파하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상의 존재하는 다른 책들은 누에코치가 실타래 풀어 나오듯 동서양의 고전을 인용해 나온 것들이에요. 그 근본은 고전 책에 있습니다.” 10권의 고전 안에 어떤 책들을 포함하겠느냐고 묻자, 톨스토이의 인생론, 플라톤, 아놀드 토인비, 맹자, 손자병법 등 사람 이름과 책 제목이 섞여 나왔다.

그에게 살면서 가장 중요했던 책을 꼽으라면 손자병법이다. “손자병법을 전쟁서로만 아는 분들이 있는데, 이 책은 병법에 국한되지 않는 삶의 지침서입니다. 시공을 뛰어넘어 경영, 인간관계, 네트워크 형성 등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어요.”

또 그는 강조하려는 듯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다. “책에서 배운 것이 체득되면 정치를 하면서 주고받는 것과 딱 맞아 떨어집니다. 정치 현장에서는 반걸음 앞서서 앞을 내다봐야 하는데, 미리 예견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전략이나 전술을 짤 때도 필요해요.” 여기서는 그가 <손자병법>에서 특히 좋아하는 글귀라고 말한 부분을 소개한다.

 

其疾如風(기질여풍) : 이동할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其徐如林(기서여림) :나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侵掠如火(침략여화) : 적을 공격할 때는 불처럼 맹렬하게

不動如山(부동여산) :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읽고 외우고 사색하고 기록하라

그는 책을 제대로 소화하는 방법으로 읽고, 외우고, 사색하고, 기록할 것을 권했다. 또 책은 자신의 수준보다 한 단계 수준이 높은 것을 선택하고, 그런 책을 반복적으로 읽으라고 조언했다. 그래야 뇌를 충분히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해 온 지난날들은 여러 권의 독서 노트로 그의 곁에 남았다. “책의 중요한 내용을 기록하고 옮겨 적습니다. 심지어 연설 내용, 신문에서 본 내용, 지나가면서 생각난 것들에 대해 제 생각을 정리해두죠. 40년 이상 그렇게 했고 어제 저녁에도 했어요. 이 한 줄을 보면 책의 내용 전체가 생각이 납니다.”

그의 독서 노트는 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세상의 소리들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까지 나란히 정리해 두었기 때문이다. 예로 그는 인간의 자기형성과 만남이라는 제목의 신문 사설을 스크랩해 독서 노트에 붙이고는, 같은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적어 한 면 빼곡히 채웠다. “이것은 대학 다닐 때 내가 이 주제로 사설을 쓰면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면서 쓴 겁니다. 이렇게 쓰면 정리가 되지요.”

그의 마음속에는 중국의 문학자이자 사상가 루쉰(노신)의 삶과 사상을 다룬 노신전 : 루쉰의 삶과 사상도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청년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그는 청년아, 나를 딛고 일어서라고 한 루쉰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자양분을 청년에게 나눠주어야 함께 성장할 수 있고, 사회가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국 청년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 루쉰처럼, 그는 자신의 어깨를 기꺼이 청년에게 내어주려 한다.

인문 도서의 가치를 깨닫기 바라

그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맹자를 꼽는다. 요즘 인문 고전을 등한시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은데, 자기개발서의 열풍 뒤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사상가들의 인문 고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가 맹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예증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인간 군상에 대한 예증을 읽다 보면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혜가 몸 안으로 스며든다. 그는 지금도 맹자를 반복해서 읽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있다.

기본적으로 고전을 아끼고 많이 읽어온 그는 현대에 나온 책으로는 이지상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인상 깊게 읽었다. “젊은 작가가 쓴 것이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읽어보니 저자의 독서량이 많고 인문 고전의 필요성을 잘 정리했더군요. 인문 고전의 중요성은 느끼지만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분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책입니다. 앞으로 계속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 같아요.”

선친의 독서 유산, 이제는 세 아들에게

그가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바쁜 틈을 쪼개어 책장을 넘기는 순간이다. 늦은 시간 귀가한 날 밤에도 그는 꼭 책을 읽어야 잠자리에 든다.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박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책은 부지런해서 읽는 것이 아니고 습관이 돼야 읽는 겁니다.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게 의미 있는 것이죠.”

그는 책이 자신에게 자양분과 같다고 말했다. 들판에 핀 꽃 한 송이도 햇살과 물과 바람 등 다양한 자양분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그 자신은 책이라는 필수 자양분을 통해 지금까지 성장해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독서 습관은 이제 세 명의 아들에게 대물림 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가르쳤듯이, 이제는 아들에게 매일 5~10분씩 큰 소리로 책을 읽을 것을 권면한다. 아버지를 닮아 가는지, 그의 아들들은 지역 도서관의 책을 수천 권 읽었다고 말할 만큼 애서가들로 성장하고 있다고. 독서하는 집안의 바통은 그렇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책속에서 길어 올린

내 마음을 흔든 구절

청년아, 나를 딛고 일어서라

魯迅傳(노신전): 루쉰의 삶과 사상